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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난지크] 바다





 

 

언제부턴가, 내 몸 어디선가, 또는 내 주위 어디선가 생선비린내 같기도 하고, 바다 비린내같기도 한 미묘하고도 역한 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잦은것은 아니였다. 어쩔땐 삼일에 한번, 어떤때는 하루에 두 세번씩 느껴졌다. 깨끗이 씻고 향긋한 섬유유연제를 넣어 세탁한 옷을 입어도,  맛있는 냄세를 풍기는 요리 앞에서도, 연인의 품에 안겨있을때 조차 나는 약간 불쾌하기도 하고 아니기도한, 그 바다 비린내를 맡았다. 향기를 느낄때쯤 주위를 돌아보면 비린내를 연상하는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장소, 옷차림, 사용한 향수, 로션이나 스킨, 같이 있던 사람, 물건, 동물 그 모든게 제각각이였다. 그때의 공통점이란 오직 '나' 하나 뿐이였다. 

 

"...로난. 나한테서 비린내나지않아?"

연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갸웃거렸다. 길게 내려온 옆머리가 어깨에 살짝 닿았다.

"음. 글쎄요."

의문을 가득품은 눈을 이내 부드럽게 휘어트리며 로난이 내 어깨에 기대온다. 숨을 들이쉬는게 느껴졌다.

"아뇨. 언제나처럼 좋은향기인걸요?"

"흐응.. 그래?"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연인을 끌어안았다. 그래, 너한테서도 좋은 향기가 나. 로난 특유의 달콤한 향기. 나에게도 아직 나만의 향기가 나고있을까. 바다 비린내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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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짙어진다. 빈도수가 높아진다. 하루에도 몇번씩, 이젠 세보기도 귀찮을만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바다에 간지 얼마나 되었을까? 장담할순 없지만 최근은 아닐것이다. 수산시장같은 곳은 어떨까. 그것도 아니였다. 장을 보는건 로난이였고 나는 해산물을 즐기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비린내가 심해지는건, 어딘가에 분명 이유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은 나를 끌어안으며 별일 아닐꺼라 도닥였지만 부드러운 그의 말도 바다 비린내를 느끼는건 막아줄수 없었다. 나는 점차 그 원인을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 이젠 하루종일 생각을 멈출수 없었고 내 눈은 조금이라도 관련된것을 쫒아 움직였다. 내 변화에 로난이 불만스러워 하는걸 알았지만 멈출수 있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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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자면 최악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그 외엔 생각해볼수 없었다. 나는 눈을 뜨고 있는 시간 내내 비린내에 시달렸고 어떨땐 자면서도 그것을 느꼈다. 나는 내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버린걸 알고있다. 이제는 무엇이 옳은지 알수없다.

나는 꿈에서 생선이였다. 언제는 해파리였고 또 언젠가는 산호이기도 했다. 나의 색은 아름다웠지만 내 몸 사이로 작은 물고기들이 지나다니는건 그닥 유쾌한 일은 아니였다. 그리고 나는 바다에 가라앉은 시체였다.

눈을 떴을때 나는 눈물을 흘렸지만 해답을 찾아낸듯한 기분이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아름다운 마지막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닐까. 연인에게 사랑받고 내 뜻대로 삶을 이어가는. '살아있는' 꿈을. 허나 내 몸은 바다밑, 그 어두운 심해에 가라앉아 그저 아름다운 꿈에 취해있는 나에게 구조신호를 보내는게 아닐까. 나는 지금 바다속에 잠겨있느라고, 빨리 현실로 돌아오라고.

로난은 내 말을 듣고 화를 냈다. 울상지으며, 내 손을 잡으며 병원에 가자하였다. 로난으로선 당연한 반응이였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언제쯤 꿈에서 깰까, 아니 어떻게해야 꿈에서 깨지않을까. 내 관심사는 그것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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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비린내를 맡지않는 시간이란 없게 되었다. 완전히 익숙해져서, 이젠 잠깐이라도 그것을 느끼지 않을땐 위화감마저 느끼곤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꿈에서 깨지않았다. 이 환상이 좀더 오래가길 빌었다. 몇번이고 악몽에서 깨어나 로난의 품에 안겨 울었다. 연인이 깰까 숨을 참으며 울음을 삼킬때쯤이면 따듯한 손이 내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곤 했다.

 

"또 악몽을 꾸셨습니까."

대답을 하려해도 끅, 끅하는 소리만 새나왔다.

"이젠 제가 아무리 이게 현실이라해도 믿어주지 않겠죠."

응. 왜냐면 이건 정말 꿈이니까. 이번엔 차마 대답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냥 환상이라 생각하세요. ...제가. 지크의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 드릴께요. 계속 함께 있는다면, 그럴수 있다면. 환상도 현실이나 마찬가지겠죠. 그렇죠?"

고개를 들어 로난의 얼굴을 보았지만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웃고 있을꺼라 생각했다. 

로난의 말은 궤변이였지만 계속 함께있겠다 말하는 자체로도 큰 위안이였다. 비린내는 여전하지만 현실이라고 믿어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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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꿈을 꿨다. 언제나 꾸는 꿈처럼 난 바다 밑바닥에 둥둥 떠있었다. 오른쪽 발목이 어딘가에 걸려 움직여지지않는다. 숨이 점점 막혀왔다. 열심히 발버둥쳤지만 발목은 빠지지않았다. 점점 흐려져가는 나의 의식속엔 로난이 걱정하지않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였다. 필사적으로 움켜쥐고 있던 폐속에 있는 약간의 공기마저 수면위를 향해 떠올라가 버리고 이젠 죽겠구나, 싶었을때였다. 옆에 누군가가 있는것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자 그곳에선 로난이 서있었다. 아니 떠있었다. 나와 로난사이에 무언가가 가로막고있는 것처럼 그의 얼굴은 흐릿해서 표정을 알수 없었다. 더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갔을때였다. 가만히 떠있던 로난의 얼굴에 비늘이 있었다. 볼에, 눈 위에, 얼굴 전체에 쇠빛 비늘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아악-! 짧은 비명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났다. 최악이였다. 이때까지 꾼 악몽중에 최악의 악몽이였다. 비린내가 너무 독해서, 이젠 주위의 것까지 바다와 연관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불안감에 괜시리 로난을 확인하고 싶어져 옆을 더듬거렸으나 만져지는건 싸늘한 한기뿐이였다.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씻으러 간걸까. 잠시 물을 마시러간걸까. 서둘러 시간을 확인했다. 6시 40분. 애매한 시간이였다. 어쩌면 오늘은 조금 일찍 출근했을지도 모른다. 별로 드문일은 아니였다. 하필 그런 꿈을 꾼날 이렇게 일찍 출근하다니 참으로 얄궂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로난은 출근해버렸고 로난이 보고싶으면 퇴근해서 집에 올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꿈을 꾸는동안 땀을 흘린듯, 몸이 오싹했다. 이불을 차버린듯 발도 싸늘했다. 작게 한숨을 쉬며 이불을 여미는 대신 몸을 웅크렸다. 빨리 보고싶다.. 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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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녁이 되어도 로난은 오지 않았다. 아니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인 오늘도 오지않았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 전날 출장을 간다 말했던것 같기도 했다. 일주일 씩이나 된다며 내가 화를 냈으나 로난은 언제나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그 특유의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일주일은 금방가요. 착하게 기다릴수 있죠? 하며 속삭였다. 이제 3일 됐으니 사흘은 더 기다려야한다. 초조했다. 손톱을 깨물었다. 생선꿈을 꾼건 어쩌면 로난이 없어서일꺼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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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이 지났다. 그는 오지않았다. 어떻게 된거지. 초조하게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출장을 간다던 그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몸을 웅크렸다. 나에게 거짓말을 한걸까.  출장 대신 다른여자, 또는 다른 남자와 어디론가 가버린걸까. 어쩌면 있지도 않은 비린내에 시달리는 내가 지긋지긋해져 도망쳐버린걸까. 눈을 감자 눈물이 흘렀다. 이유가 어떻든, 어디로 갔든간에 지금은 로난이 보고싶었다. 그 푸른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미소와 나직한 목소리가 듣고싶었다. 어디로 간걸까.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은 거짓말이였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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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일주일정도 지났을수도 있고, 아니면 한달일지도 모른다. 로난이 없는 환상따윈 이제 필요없는데도 난 아직 꿈을 꾸고 있었다. 비린내는 여전하다. 실제로 꿈을 꾸는 순간은 찰나라지만, 바다속의 나는 참 오래 살고있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내 세계는 이제 바다 속과도 같다. 가만히 앉아있다 손을 휘젖어보면 내 손에 액체의 뭉근한 존재감이 느껴지지않는것이 의안하다. 시간이 갈수록 기억속 로난이 흐릿해지는것 같다. 로난이 자리를 비운지 날짜를 세보면 얼마 되지않은것 같은데 마치 일년은 됐던것처럼 그 시간이 멀게 느껴진다. 게다가 로난의 얼굴을 떠올리려하면 예전, 악몽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 떠올라 이젠 그것도 회피하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것이란 로난과 살았던 이 집과 로난에 대한 기억, 그리고 로난이 곧 올지도 모른다는 조막만한 기대. 이정도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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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난과 관련된 물건을 하나하나 찾아보고있다. 잘보이는것부터. 로난의 칫솔, 머리빗, 베개.. 로난을 떠올리며 혼자 의미없이 웃어보다, 기억에 없는 상자를 발견했다. 평범한 나무상자였지만 조그마한 자물쇠가 달려있었다. 기억에 없는 상자니 당연히 열쇠가 어디있는진 알수 없었다. 어쩌면 로난의 물건인지도 몰랐지만 나는 그것을 열어보고싶었다. 이 집에서 내가 모르는것은 없었다. 로난이 비밀을 만들고 싶었다면 다른곳을 택했겠지. 나는 그리 생각하며 자물쇠를 잡아뜯으려했다. 그러나 쇠로되어 단단히 잠겨있는 자물쇠는 물론이고 자물쇠와 상자도 꽤나 단단히 붙어있어 손으로 하는건 무리였다. 공구상자를 찾아 드라이버로 상자를 벌렸다. 상자의 외벽은 생각보다 얇아서 이대로가다간 상자가 완전히 부서질것 같았다. 그래도 억지로 비틀어 틈을 내고 그 안으로 더 비집고 들어가 드라이버를 꺾었다. 금방 우드득하며 나무상자뚜껑이 갈라졌다. 그 비참한 소리와 함께 내 안에 있던 무언가도 갈라져 망가진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갈라진 상자뚜껑을 완전히 뜯어내버리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자세히보니 바닥에 딱 달라붙어있는 흰종이 몇개가 눈에 띄였다. 이번엔 손상시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뜯어내 꺼냈다. 종이는 두장. 기차표였다. 출발지는 이곳과 가까운 기차역이였고 도착지는.. 바다였다.

 

 가만히, 힘없이 주저앉아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 안난다. 아니 기억 안날것 같다. 머리가 아파왔다. 구토감이 밀려왔다. 이제와서 이것이 로난물건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렴풋이 이것을 상자안에 넣었던때가 기억나는 듯했다. 왜 찢어버릴생각을 하지않았을까? 어째서 이런 조그마한 쓰레기를 왜, 버리지않고 상자에 고이 넣어놓은걸까. 신경질적으로 상자를 집어던졌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널부러진 그것은 마치 나의 모습과도 같아 소름끼쳤다. 

 

 

소리죽여 오열했다. 내 머리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기억에 떼쓰는 아이처럼 미친듯이 몸부림쳤다. 누군가가 내 귀에 무언가 속삭이고 있는것도 아닌데 난 귀를 틀어막았다. 나는 기어코 바다속 심연과도 같은 현실로 깨어난 것이였다. 폐속에 물이 가득찬것처럼, 숨을 쉴수 없는 것처럼 괴로웠다. 꿈에서 깨지말지, 왜 내 곁을 떠났어? 옆에 있는 의자를 걷어찼다. 로난의 것이였다. 아니, 아니였다. 이집에 로난것은 없다. 

모두 내가 버렸다. 예전에.

 

 

 

 

 

 

미친듯이 울고, 발버둥쳤다. 나와 로난에 대한 원망이 흘러넘쳤다. 토할것만 같았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수없어서 물건을 부쉈다. 모두 내가 산, 내 물건이였다. 한동안 화풀이를 하고서, 정신차려보니 발과 손 여기저기에서 피가나고있었다. 

"윽.. 우웃..아...."

갑작스럽게 깨닫기 시작한 통증에 신음하며 주저앉았다. 아파. 아파. 로난.. 어디있어..? 로난이 아닌 내 안에 조소어린 목소리가 대답했다. '..어디있긴. 다 알고 있으면서.' 

그렇다. 알고있었다. 아픔을 삼키며 몸을 웅크리자 마지막 기억부터 조금씩 떠올랐다.

로난의 물건을 버리고, 이사까지 했지만.. 나는 다시 그가 필요할 물건들을 사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내가 로난을 추억하며 조심스럽게 매만졌던 그 물건들 모두. 왜냐면. 로난이 나와 다시 살기시작했기때문에... 그랬다. 처음 이곳에 이사왔을때 분명 로난은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는 내 곁에 있었다. 처음엔 목소리만 들렸다. 내가 울고있을때면 왜 그러냐고 물어왔다. 자기전엔 잘자라며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 다음엔 모습이 보였다. 집에 들어올때면 날 맞이했다. 어떨땐 그가 들어오기도 했고 요리를 하기도 했다. 만들어진것 없었지만. 내가 반신반의하며 끌어안으려하거나 손을 잡으려하면 그는 사라져 버렸지만 점차 닿을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몸을 섞는것까지. 그렇게 점점 로난의 존재는 확실해져갔다. 처음에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또는 꿈을 꾸고있다고생각했다. 그러나 행복했다.

 하지만 이제 없다. 이미 깨달았으니, 그떄처럼 다시 시작할수 없다는걸 알고 있다. 부서진 물건들 사이로 기차표가 보였다. 그래, 저것만이 로난을 기억하고있는 단 하나의 물건이다. 저것을 살때도 이렇게 기분이 비참했다. 

 

 기차표에 적힌 날짜하고도 며칠전, 아주 추웠던 그 날에, 나 혼자 기차표를 끊었다. 그리고 로난 앞에 내밀었다. '가자.'하고.. 그 외엔 아무말도 하지않았지만 그는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알고있었다. 그리고 내가 단 한마디만 말한것처럼 그도 알겠다는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난 혼자 방에 들어가버렸고, 문앞에 주저앉아 소리죽여 울었다. 우린 둘다 지쳐있었다. 서로 사랑한다말하며 기쁘게 안아주었던건 이미 과거의 일이였다. 사랑하지않는 것은 아니였다. 다만 살아가는데에 사랑만으론 힘들었다. 죄를 지은 사람마냥 몰래 사귀는것에 대한 스트레스, 아무것도 모르는 주변의 압박, 아무것도 모르기에 할수있는 그 비수같은 말들. 나는 점차 지쳤고 상처받았고 초조해졌다. 로난을 잃을까봐 두려웠다. 난 로난만 있으면 괜찮았지만 그는 아니였다. 책임지고 있는 일이 많았고 나를 제외한 소중한것도 많았다. 그런 그를 잃고 싶지않아 초조했기때문에 날 그렇게 만드는게 화가났다. 나는 점점 그를 애증했다. 로난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질투했다. 그러자 그의 감정도 점점 까맣게 물들어갔다. 서로 순수하게 사랑했던 우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그가 누굴만났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고 그는 그런 나를 질려했다. 서로 고함을 질렀다. 상대방을 깎아내렸고 진심이 아닌걸 알면서도 그걸 마음에 쌓았다. 마지막, 우리가 싸우다가 내가 화를 참지못해 그가 제일 아끼던, 내 이름을 붙인 작은 화초의 화분을 그의 발치로 던져 깨트려버렸을때, 그 표정이 눈에 박혀 잊혀지지 않는다. 화분과 함께 우리도 산산조각 나버렸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었고 그도 울었다. 그 후로 우린 서로에게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눈도 마주치지않았다. 그러고나서 며칠뒤 내가 기차표를 내민것이다. 같이 죽자고.

 

 그러나 바다. 그 절벽앞에 도착한 우리는 또다시 엇갈렸다. 그는 절박한 눈으로 그냥 돌아가자했다. 다시 살아보자고, 다시 시작해보자 말했다. 하지만 난 이미 끝났다는걸 알았다. 여기서 죽지않으면, 여기서 모든것을 끝내지않으면 결국 헤어지는 수밖에 없단걸. 다시 시작하기엔 서로 너무나 망가져있었다. 나는 이제와서 죽는게 무서워졌냐며 조소했다. 겁쟁이라 모욕했다. 그는 발끈했고 나를 원망하며 소리쳤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서서까지 우리는 싸웠다. 그러나 그것을 건넌 사람은 한명뿐이였다.

 그때의 기억은 흐릿하다. 내가 몸싸움 하던중 그를 밀어버린건지, 그가 비틀거리다 발을 헛디딘건지, 아니면 결국 스스로 뛰어내린건지.. 그가 사라져버린 쇼크에 잠시 굳어버린 나는 풍덩- 하는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다급히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지만 로난의 모습은 이미 심연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따라 뛰어내렸고 로난의 모습을 제대로 찾아내기도 전에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때 난 절벽근처 부둣가에 누워있었다. 내가 물을 토해내자 주위의 웅성거림이 더 커졌다. 절벽근처엔 사람이 별로 없는데다 절벽위는 거의 오지와도 같았지만, 누군가가 우리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사람을 불러온것이였다. 한참을 콜록대다 로난이 없다는걸 깨달았다. 주위를 둘러싼 구경꾼 하나의 옷깃을 잡고 절박하게 로난의 안위를 물었다. 내가 다짜고짜 로난이 어딨냐고 묻자 의문의 빛을 띄던 눈동자가 이내 어두워졌다.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가, 나를 건져낸 구조원조차 같은 눈빛을 하고있었다. 난처함과, 동정이 가득담긴 눈. 로난은 아직 그 아래에 있다했다. 차가운 겨울바다, 그 심연 안에 혼자. 

 오지랖 넓은 몇몇의 충고가 있었지만 난 그곳에서 기다렸다.  그곳에 서서 사람들이 로난을 찾기위해 노력하는걸 보았다. 난 쓸모가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로난에게도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난 기다렸다. 모두가 로난은 죽었다고 말했지만 난 믿을수없었다.

 

 

 로난은. 며칠후에나 되어서야 발견됐다. 파도에 밀려가던중 발이 바닥의 암초에 걸려 떠오르지도 떠내려가지도 못했다는것이였다. 구조원이 말하며 나와 로난 사이를 가로막았다. 나에게 로난을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던 구조원을 고집스럽게 제쳐버리고 본것은, 그것은 더이상 로난이 아닌 '어떤것'이였다. 그것이 로난이란걸 알수 있는 단서는 고작 입고있는 옷과 긴 머리카락, 그뿐이였다. 내가 어루만지며 입맞췄던 얼굴이 하얗게 퉁퉁불어있었고 코나 입에선 작은 물고기인지 아니면 다른것인지 모를 생명체들이 기어나왔다. 그를 보는순간 구토감이 치밀어올랐다. 그대로 주저앉아 울며 빈속을 게워냈다. 참을수없었다. 흉측해져버린 그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 그저 무기물이 되어버린 로난이. 

그리고 가장 그 순간 가장 힘겨운건 눈앞의 잔상을 막아도, 결국 참을수 없이 내 뇌리에 깊히 박힌 바다비린내와 로난의 시체가 썩는 냄세였다.

 

 

 

나를 몇달동안 괴롭히던 로난의 냄세는 이미 사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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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하고 회사에서 일하던 무렵 한동안 엄마때문에 생선구이 냄새에 시달리다가 쓰게 된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 그만두고 3주동안 구상에서 썼다고 아래에 써있더라 ㅇㅅaㅇ 기특한것.. 나중에 보니 존좋인듯!


여기 올리면서 좀 고치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안고침.. 존좋이긴 하지만 설정구멍도 보이고 문체도 맘에 안들고 이래서 고치려면 한도 끝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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